Obituary of Abbot Odo

IN CHRISTO OMNES UNUM SUMUS

Abbot Odo (Walter) Haas OSB

 Korean name: 오도환吳道煥

Abbot Odo Haas, the first abbot of Waegwan Abbey, died because of a chronic disease on 17 February, 2019 at thirteen minutes past three in the afternoon at Fatima Hospital in Daegu. We ask for your prayers so that Abbot Odo may find true peace in God. He was 88 years old and in the 66th year of his vows.

Abbot Odo was born on 4 March 1931 in Karlstadt am Main, a city within the Diocese of Würzburg. When he was baptized he received the name Walter. His parents were Otto and Dorothea Haas. It was the difficult time between the First and the Second World War when Abbot Odo came into this world. In 1937 he started to attend elementary school. Shortly after the war, in 1946, he began to study at the gymnasium. In 1952 he entered Münsterschwarzach Abbey. Here he received as his monastic name the name of Abbot Odo of Cluny Abbey which is famous for its reforms during the Middle Ages. He made his temporary vows on 12 September, 1952. Thereafter he began to study
philosophy at the Archabbey of St. Ottilien. Then he studied theology at Würzburg University where he concluded his studies with a licentiate. On 6 July 1958 he was ordained a priest by Bishop Dr. Josef Stangel. His first assignment as a priest were the parishes which at that time were cared for by Münsterschwarzach Abbey. In 1959 he started to prepare himself for the Mission in Korea.

He was sent into the Mission solemnly together with more than 500 other new missionaries from Europe on 10 October 1959 by Pope John XXIII. in the Cathedral of St. Peter in Rome. He boarded a ship and arrived in the harbour of Busan (Korea) on 7 March, 1960. After learning Korean he was assigned to the parish in Sangju as assistant priest. It was a ministry which did not last long because he was elected at the very young age of 33 years as the first abbot of Waegwan on 28 April 1964.

Abbot Odo has laid the foundation for Waegwan Abbey which because of its past history is closely related to Tokwon Abbey in North-Korea and Yeongil (Yanji) Abbey in China. Abbot Odo has made it clear from the beginning of his service as abbot that in the future there should be a Korean to lead the abbey in Waegwan. He did not wait long. After close to 7 years as abbot of Waegwan he resigned from his office on 24 February, 1971. Then the first Korean abbot was elected. It was Abbot Placidus Ri.

Soon after his resignation Abbot Odo went to Japan. He did so because of his missionary consciousness and also to create space for his successor. In Japan he joined a community of Benedictines in Meguro (Tokyo) who were also responsible for the djunct parish of St. Anselm. After learning Japanese Abbot Odo became the parish priest. The parish had a special character because it was a Benedictine Parish. It was instrumental in making Benedictine spirituality known in Japan.

Japan was not the last station for Abbot Odo. Another big missionary service was asked from him by the leadership of our Congregation of St. Ottilien, namely to start a new monastery in the Philippines. He went there in 1982 and stayed for 22 years. The location was the southern Philippine island Mindanao. It was there where he founded together with two confreres from Germany and two from Korea a Benedictine community in Digos which has grown into a Conventual Priory, a flourishing monastery, which is spreading through various means the Good News in the region.

In 2004 Abbot Odo came back to Waegwan for a year, – to recharge. Then, on 17 January 2005, he went – again at the request of the Congregation of St. Ottilien – to one of the 4 great churches in Rome, The Papal Basilica of St. Paul Outside the Walls, here he was also a member of the Benedictine Community which was in charge of the church. His assignment was to hear confession for the pilgrims coming to the church. On his confessional was a sign that German, English, Korean, Japanese or Cebuano (a Philippine language) could be spoken during confession. But Abbot Odo recalled that most of those who came for confession were Italians!

In August 2008 Abbot Odo returned to Korea. Here he served as chaplain for the Filipinos who came on Sundays to attend Mass to the Workers’ Cultural Center in Gumi which was run by Waegwan Abbey at that time. He also went to the Benedictine Monastery in Kumily, India, to assist the community there. There was also a time when he served as chaplain of the Benedictine Sisters in Tansu, Taiwan. Throughout his life he was and remained a missionary who was available when and were he was needed.

Up to the beginning of this year Abbot Odo was always present when our community prayed and meditated. He also had the wish to visit his German homeland one more time, but starting from 21 January his health faltered and he had to be transferred to Fatima Hospital of the Benedictine Sisters in Daegu where he died on 17 February.

‘Eternal rest grant unto him, O Lord, and let perpetual light shine upon him!’

Waegwan, 18 February 2019

Abbot Blasio Park and the Community of Waegwan Abbey

트리농장에서 알립니다.

안녕하세요. 뉴튼 수도원 트리농장 담당자 요셉 수사입니다. 더운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왔네요. 다름이 아니라, 저희가 도움이 필요해서 이렇게 손을 벌립니다.

트리 전지 작업을 합니다. 기간은 9월 9일부터 11월 20일까지 합니다. 주로 월요일에서 금요일까지 하고 시간은 9시부터 4시 경까지 할 예정입니다. 복장은 긴팔 셔츠, 긴 바지, 두꺼운 신발 등을 준비해 주시면 되고, 하루나 이틀정도씩 해주셔도 많이 감사합니다.

연락처는 김 요셉 수사: 973-362-8273 그리고 appledhkim@hotmail.com 입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한 가을 되세요, 찬미예수

Happy Fourth of July !!

Happy Independence Day !!!

 

God of justice, Father of truth,
who guide creation in wisdom and goodness
to fulfillment in Christ your Son,
open our hearts to the truth of his Gospel,
that your peace may rule in our hearts
and your justice guide our lives.

from the Collect of the Mass on the fourth of July

Sewol Ferry

The Sewol Ferry sunk on April 16, 2014 in South Korea. 304 passengers (most of them were high school students) and crew members died in the disaster. Among those victims the bodies of 9 people are still missing.
Please remember those victims and their families during this advent season and the coming Christmas season in your pray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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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입장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한국 천주교회는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이 초래할 상황을 주시하고, “평화는 결코 ‘무기라는 힘’의 균형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상호 신뢰에 의해 확립된다.” (「지상의 평화」, 110.113항 참조)고 하신 요한 23세 성인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아래와 같이 교회의 입장을 표명한다.

1.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세계 평화에 대한 우려

2016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현재의 지구촌 상황이 이른바‘산발적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릴 만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규정하신 바 있다. 인종, 민족, 국가, 종교 간 갈등이 점차 심화되는 현실에서 강대국의 충돌 지점에 위치한 한반도의 평화 유지가 갖는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권 방어에 대한 현실적 실효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사드 배치는 한반도가 새로운 냉전체제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교회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이 아니며, 오로지 적대 세력의 균형 유지로 전락될 수도 없다.”(사목헌장 78항)고 천명한다. 군사력의 증강을 통해 한반도의 위기가 진정되고, 평화가 오리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평화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며, 정의와 사랑에 기초한 질서의 확립을 통해 이룩된다.
여러 차례 주장한 바와 같이, 핵개발은 북한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 이로 인한 강대국 간의 긴장 고조가 민족의 공동선과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북한의 핵을 저지하기 위한 사드 배치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군비경쟁이 인류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안겨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동시에 지성과 감성의 교류와 공감이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현장도 경험하였다. 한반도의 핵문제를 둘러싼 긴장과 위기는 군사력의 우위를 과시하는 압박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2. 민족 화해 분위기의 냉각에 대한 우려

지정학적 특성과 강대국들 간의 이념적 대립으로 분단된 한반도는 분단 71년의 역사 속에서 위기를 평화로 이끌어가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7·4 남북공동성명’(1972), ‘남북기본합의서’(1992), ‘6·15 남북공동선언’(2000), ‘10·4 남북공동선언’ (2007) 등은 남북 관계의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노력의 귀중한 결실이다. 최근의 신무기의 추가적 개발과 배치는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그간의 모든 민족화해와 공동번영 노력에 역행하는 일이다.
최근의 남북 관계는 개성공단의 폐쇄로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드 배치로 인해 주변국 간의 긴장과 적대감이 증가된다면 남북 협력과 대화의 길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이에 교회는 정부 당국이 한반도를, 패권이 충돌하는 위험 지대가 아닌 화해와 협력의 상생 지대로 변화시켜 가는 노력을 경주해 줄 것을 촉구한다. 힘이 아닌 설득과 대화를 통해 핵 포기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전방위적으로 노력해 줄 것을 간절히 촉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방한 중 청와대 연설에서 언급하신 바와 같이, “외교는 화해와 연대의 문화를 증진시켜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어 가는 끝없는 도전이며 가능성의 예술”이다. 진정한 평화는 상호 비방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인내를 수반하는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정부 당국이 평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 주기를 거듭 촉구한다.

3. 민생 불안과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

한국 천주교회는 사드 배치가 어려움에 처한 한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아울러 교회는 균형 있고 절도 있는 군비 축소와 대화 협력을 통해서 궁극적인 평화 실현과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또한 교회는 “발전은 평화의 새 이름이다.”(「민족들의 발전」, 76항)라고 선언한다. 비인간적인 삶의 여건을 인간적인 환경으로 이해시키는 발전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후 국제 갈등으로 인해 남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악화될 경우 평화 실현은 더욱 힘들어지리라 예상된다.
한반도를 포함한 전 세계의 위기는, 자신에게 살생의 무기를 들이대고, 자기 화살을 불화살로 만드는(시편 7,14) 우를 범하지 않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이사 2,4)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임을 보여준다. 특별히 우리 민족은 한반도의 평화가 군사력의 우위로 이룩될 수 없으며, 민족 간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한 걸음씩 진행되어 나아가야 함을 실증해야 할 시점에 있다.
그러므로 한국 천주교회는 한반도의 군사적, 경제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사드 배치를 강행하려는 현재의 상황에 심각한 우려와 함께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다.
사드의 효능도 검증하지 않은 채 사드 배치를 강행하여 국민들에게 불신과 불안을 안겨 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커다란 외교적인 손실을 입게 될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환경평가를 거치지 않은 채 강행하는 사드 배치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증진시키는 방안을 모색해 주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2016년 7월 15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