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

대통령 탄핵과 관련한 한국 천주교회의 입장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아모 5,24)

한국 천주교회는 대통령과 소수 측근의 국정 농단 사태로 국민 주권과 법치주의 원칙이 유린되는 반헌법적이고 반민주적인 현 상황을 깊이 우려하며, 대통령 탄핵 정국을 앞두고 다음과 같은 입장을 천명한다.

1. 국민의 대통령 퇴진 요구는 정당하다

민주주의 국가의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대통령은 국민에게서 국가의 주권을 위임 받은 대리자이다. 지금까지 세 차례에 걸쳐 발표된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문에는 이러한 위임받은 대리자로서의 인식과 국민을 주인으로 섬기는 공복의 책임감이 철저히 결여되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취임 후 지난 4년 국민의 고통과 울부짖음에 눈과 귀를 막고, 극소수 특권층의 인의 장막 안에 스스로를 고립시킨 채 국민과의 소통을 단절하였다. 이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바탕을 무시한 봉건시대의 제왕적 처신이다.
수차례에 걸친 촛불집회는 수많은 아픔과 희생 위에 세워진 이 나라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는 국민의 몸부림이다. 교회는 인간의 존엄과 공정을 선포하고 모든 이가 차별받지 않고 존중받는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우리 국민들이 촛불집회에서 보여준 평화적이고 질서 있는 비폭력 시위를 적극 지지한다. 이러한 모습은 전 세계와 후손들에게 깨어있는 민주주의의 시민 정신을 증언하는 역사적 기록이다. 우리 국민들은 이미 4·19 혁명, 5·18 민주화 운동과 6·10 민주 항쟁의 역사적 파랑 속에서 민주주의의 전통을 쌓아올리며 불의한 권력을 평화적으로 쇄신시킨 성숙한 정치적 시민 의식을 보여주었다. 이제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에 새로운 장을 기록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함께 행동하는 국민들의 하나된 목소리를 진정으로 엄정하게 받아들인다면 대통령은 자신의 퇴진에 관하여 정략적 타산으로 더 이상 시간을 끌지 말아야 한다. 국민 모두로부터 불신임당한 현 시국은 그 자체가 불안정이고 무질서이다. 그러한 가운데에서도 국민은 이미 질서를 위한 자신들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질서는 외형적 조직을 억지로 유지하는 것보다 진실과 정의를 바로 세울 때 참되고 견고한 질서로 탄생한다.

2. 국회는 당리당략보다 국가와 국민을 걱정해야 한다

대한민국의 헌법은, 대통령의 명백한 범법 행위나 초헌법적인 범죄 행위가 인정될 때 국회의 탄핵 절차를 거쳐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할 권리가 국민에게 있음을 인정한다. 대통령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국회는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탄핵소추권을 행사할 의무가 있다.
탄핵 절차가 진행될 경우, 대한민국은 국가원수 궐위사태를 맞게 되지만, 이는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되돌아보는 소중한 기회이기도 하다.
지금 대한민국은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 붕괴로 말미암아 국가의 위상이 추락하고 경제가 마비되는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지도자의 지도력이 이렇게 추락하기까지 이를 방관하고 조장한 정치권은 우선 국민 앞에 깊은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가슴에 새기며 더 이상 당리당략에 치우친 근시안적 모면책을 강구하지 말아야 한다. 이제 정치권은 정략적 계산과 이해득실을 뛰어넘고 함께 힘을 모아 국가의 신뢰를 회복하며 국민들이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갈 수 있도록 국가 통치 시스템의 정상화를 위해 초당적인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정치권은 이 사태를 조속히 해결하여 국정과 민생이 하루빨리 정상화되도록 최선을 다하기를 바란다. 국민의 깨어있는 눈과 수백만 개의 촛불로 대변되는 성난 민심의 요구를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역사와 민족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결단을 내리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한국 천주교회는 국민들과 함께 성숙하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하고 발전시켜 나가기 위하여 시대의 징표를 놓치지 말고 예민한 식별력과 예언자적 직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한다. 이 땅에 정의와 평화가 강물처럼 흐르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하느님의 축복을 기도한다.

2016년 12월 7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사회주교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정의평화위원회)
위원 강우일 주교(생태환경위원회)
김운회 주교(사회복지위원회)
정신철 주교(교육위원회)
옥현진 주교(국내이주사목위원회)
유경촌 주교(매스컴위원회)

Sewol Ferry

The Sewol Ferry sunk on April 16, 2014 in South Korea. 304 passengers (most of them were high school students) and crew members died in the disaster. Among those victims the bodies of 9 people are still missing.
Please remember those victims and their families during this advent season and the coming Christmas season in your prayers. 

temp_1481654012504-1871815188

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에 대한 한국 천주교회 입장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요한 14,27).

한국 천주교회는 고고도미사일 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결정이 초래할 상황을 주시하고, “평화는 결코 ‘무기라는 힘’의 균형으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상호 신뢰에 의해 확립된다.” (「지상의 평화」, 110.113항 참조)고 하신 요한 23세 성인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아래와 같이 교회의 입장을 표명한다.

1.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세계 평화에 대한 우려

2016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현재의 지구촌 상황이 이른바‘산발적 제3차 세계대전’이라고 불릴 만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규정하신 바 있다. 인종, 민족, 국가, 종교 간 갈등이 점차 심화되는 현실에서 강대국의 충돌 지점에 위치한 한반도의 평화 유지가 갖는 의미는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수도권 방어에 대한 현실적 실효성조차 확보하지 못한 사드 배치는 한반도가 새로운 냉전체제의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교회는 “평화는 단순히 전쟁의 부재만이 아니며, 오로지 적대 세력의 균형 유지로 전락될 수도 없다.”(사목헌장 78항)고 천명한다. 군사력의 증강을 통해 한반도의 위기가 진정되고, 평화가 오리라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평화는 인간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바탕으로 하며, 정의와 사랑에 기초한 질서의 확립을 통해 이룩된다.
여러 차례 주장한 바와 같이, 핵개발은 북한 스스로 포기해야 한다. 이로 인한 강대국 간의 긴장 고조가 민족의 공동선과 동북아시아의 평화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동시에 북한의 핵을 저지하기 위한 사드 배치도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
역사를 통해 우리는, 군비경쟁이 인류에게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고, 가난한 사람에게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안겨 준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동시에 지성과 감성의 교류와 공감이 분단의 장벽을 허무는 현장도 경험하였다. 한반도의 핵문제를 둘러싼 긴장과 위기는 군사력의 우위를 과시하는 압박으로 해결될 수는 없다.

2. 민족 화해 분위기의 냉각에 대한 우려

지정학적 특성과 강대국들 간의 이념적 대립으로 분단된 한반도는 분단 71년의 역사 속에서 위기를 평화로 이끌어가기 위한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7·4 남북공동성명’(1972), ‘남북기본합의서’(1992), ‘6·15 남북공동선언’(2000), ‘10·4 남북공동선언’ (2007) 등은 남북 관계의 발전과 평화 번영을 위한 노력의 귀중한 결실이다. 최근의 신무기의 추가적 개발과 배치는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킨다는 점에서 그간의 모든 민족화해와 공동번영 노력에 역행하는 일이다.
최근의 남북 관계는 개성공단의 폐쇄로 큰 시련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드 배치로 인해 주변국 간의 긴장과 적대감이 증가된다면 남북 협력과 대화의 길은 더욱 요원해질 것이다.
이에 교회는 정부 당국이 한반도를, 패권이 충돌하는 위험 지대가 아닌 화해와 협력의 상생 지대로 변화시켜 가는 노력을 경주해 줄 것을 촉구한다. 힘이 아닌 설득과 대화를 통해 핵 포기를 이끌어내기 위하여 전방위적으로 노력해 줄 것을 간절히 촉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방한 중 청와대 연설에서 언급하신 바와 같이, “외교는 화해와 연대의 문화를 증진시켜 불신과 증오의 장벽을 허물어 가는 끝없는 도전이며 가능성의 예술”이다. 진정한 평화는 상호 비방이나 무력시위가 아니라, 인내를 수반하는 대화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정부 당국이 평화에 대한 확고부동한 믿음을 가지고 외교적 노력을 경주해 주기를 거듭 촉구한다.

3. 민생 불안과 부담 증가에 대한 우려

한국 천주교회는 사드 배치가 어려움에 처한 한국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대하여 심각한 우려를 표명한다. 아울러 교회는 균형 있고 절도 있는 군비 축소와 대화 협력을 통해서 궁극적인 평화 실현과 경제 성장이 가능하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또한 교회는 “발전은 평화의 새 이름이다.”(「민족들의 발전」, 76항)라고 선언한다. 비인간적인 삶의 여건을 인간적인 환경으로 이해시키는 발전만이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후 국제 갈등으로 인해 남북한의 정치적, 경제적 상황이 악화될 경우 평화 실현은 더욱 힘들어지리라 예상된다.
한반도를 포함한 전 세계의 위기는, 자신에게 살생의 무기를 들이대고, 자기 화살을 불화살로 만드는(시편 7,14) 우를 범하지 않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이사 2,4) 세상을 건설하기 위해 모두의 지혜를 모아야 할 때임을 보여준다. 특별히 우리 민족은 한반도의 평화가 군사력의 우위로 이룩될 수 없으며, 민족 간 화해와 협력을 통해 한 걸음씩 진행되어 나아가야 함을 실증해야 할 시점에 있다.
그러므로 한국 천주교회는 한반도의 군사적, 경제적 불안을 가중시키는 사드 배치를 강행하려는 현재의 상황에 심각한 우려와 함께 분명한 반대의 입장을 표명한다.
사드의 효능도 검증하지 않은 채 사드 배치를 강행하여 국민들에게 불신과 불안을 안겨 줄 뿐 아니라, 이로 인해 커다란 외교적인 손실을 입게 될 상황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지역 주민들의 건강을 위한 환경평가를 거치지 않은 채 강행하는 사드 배치를 원점에서 다시 검토하고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증진시키는 방안을 모색해 주기를 간절히 촉구한다.

2016년 7월 15일

한국천주교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

Decree on Conditions for Plenary Indulgences- During the Year of the Consecrated Life

DECREE
URBIS ET ORBIS
 
by which are established the works to be accomplished in order to obtain the gift of Indulgences on the occasion of the Year of the Consecrated Life.

 

 

[교령] 봉헌 생활의 해 대사 교령

사도좌 내사원
봉헌 생활의 해 대사 교령
(2014.11.23.)

봉헌 생활의 해에 대사의 모든 은총을 얻는 데 필요한 선행을 지정한다.

수도 단체들이 언제나 설립 은사에 더욱 더 충실하도록 쇄신을 하고 전 세계 그리스도 신자들이 거룩한 교회의 친교 안에서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굳건히 하는 좋은 기회를 마련해 주시려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제정하신 다가오는 봉헌 생활의 해를 계기로, 최근에 수도회성 장관 추기경은 이 사도좌 내사원에 대사의 은총을 얻는 데 필요한 선행을 정식으로 지정해 주도록 요청하여, 내사원은 교황의 특별 위임으로 일반 조건(고해성사, 영성체, 교황의 지향에 따른 기도) 아래서 봉헌 생활회의 모든 회원과 참으로 참회하고 사랑을 실천하는 신심 깊은 신자들에게 올해 대림 제1주일부터 2016년 2월 2일까지 전대사를 기꺼이 수여한다. 또한 이 전대사는 연옥 영혼들에게도 대리 기도의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다.

가) 로마에서는, 수도회성이 정해 제시한 일정에 따라 국제 대회와 행사에 경건하게 참석하고, 적어도 얼마 동안 경건한 묵상을 한 뒤에 주님의 기도와 승인된 신경을 바치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간구할 때마다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

나) 모든 개별 교회에서는, 교구가 정한 봉헌 생활의 날과 봉헌 생활의 해를 위하여 마련한 교구 행사 때에, 주교좌 성당, 지역 직권자의 동의로 지정된 다른 거룩한 장소, 수도원의 성당이나 봉쇄 수도원의 경당을 경건하게 방문하여 그곳에서 공적으로 거행하는 성무일도를 함께 바치거나 적어도 얼마 동안 경건한 묵상을 한 뒤에 주님의 기도와 승인된 신경을 바치고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간구할 때마다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

봉헌 생활회의 회원 가운데 건강이나 다른 중대한 이유로 그 거룩한 장소들을 방문할 수 없는 이들도 모든 죄를 끊어버리고, 전대사를 얻기 위한 세 가지 일반 조건들을 가능한 대로 먼저 이행하겠다는 의향을 지니고 열망하는 마음으로 영적인 방문을 하여, 자신의 질병과 삶의 어려움을 마리아를 통하여 자비로우신 하느님께 봉헌하고 위의 기도들을 바치면 전대사를 얻을 수 있다.

이렇게 교회의 열쇠로 하느님의 용서를 더 쉽게 얻도록 목자의 사랑으로 다가가는 사도좌 내사원은 고해 전담 의전 사제들, 참사들, 수도 사제들, 고백을 들을 수 있는 적절한 권한을 받은 다른 사제들이 언제나 너그러운 마음으로 고해성사를 거행하고 병자들에게 자주 성체를 분배해 주도록 간곡히 요청한다.

이 교령의 모든 것은 봉헌 생활의 해에만 유효하다. 이에 반대되는 것은 무효이다.

로마, 사도좌 내사원에서
2014년 11월 23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

내사원장 마우로 피아첸차 추기경
부원장 크지슈토프츠 유제프 니키엘 몬시뇰

우리강산 천하제일, 연광정 [고진석 신부의 겸재 화첩 감상]

▲ 연광정 練光亭|비단에 엷은 색|28.6×23.9cm|Yeongwangjeong Pavilion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소장
▲ 연광정 練光亭|비단에 엷은 색|28.6×23.9cm|Yeongwangjeong Pavilion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소장

중원의 큰 나라를 흠모하고 섬겼던 때가 있었다. 우리가 하늘의 자손인 줄도 잊어버리고, 아침 첫 햇살을 맞는 신령한 백성임을 자랑스러워하지도 않았다. 궁벽한 동쪽 나라 오랑캐라고 얕잡아 보이면서도 대륙의 빛나는 문명을 누리고 싶어 안달했다.

무엇을 하든 큰 나라 사람들을 따라하면서도 스스로를 소중화(小中華)라 칭하며 자랑스러워했다. 우리 것은 무엇이든 촌스럽고 속되게만 보였으므로 글이든, 음악이든, 그림이든 남의 식대로만 흉내를 내었다. 그러던 이 나라 사람들의 눈에 어느 때부터인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이 보이고, 우리 겨레의 정겨움이 가슴에 다가왔으니 어인 까닭인지 모르겠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우리 강산을 화폭에 담아내려는 시도들이 늘어났다. 이런 흐름에 겸재 정선이 우뚝 솟아있다. 물론 겸재 이전에도 실제 산천을 그리는 전통은 있었다. 하지만 실경산수(實景山水라 불리는 이런 그림들과 겸재의 그림은 달랐다.

겸재는 맑고 투명한 하늘 아래 수려한 자태로 빛나는 실제 풍광을 자신만의 독특한 붓놀림으로 담아냈다. 그는 중국 산수화의 두 갈래인 북종화와 남종화를 절충·조화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일구어 냈다. 북종화는 투명한 대기 사이로 보이는 선명한 화북지방의 산세를 선(線) 위주로 나타냈고 남종화는 늘 안개가 끼고 물이 많은 강남지방의 풍경을 먹의 번짐을 통해 표현했다. 겸재는 양자의 절묘한 조화를 통하여 우리나라 금수강산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표현하였다. 겸재는 진경산수(眞景山水)라는 새로운 화풍으로 조선 회화의 어엿함과 긍지를 보여주었다.

이번에 소개되는 그림은 겸재 정선이 그린 연광정(練光亭)이다. 지난 2006년,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에서 반환된 겸재 화첩에 끼어 있는 그림이다. 연광정은 평양의 대동강 강변에 위치하여 경치 좋기로 유명한 정자이다. 두 채의 건물이 기역자로 모서리를 맞추어 지어진 정자는 사면이 탁 트인 바위 위에 얹혀 있다. 이 바위가 덕암(德巖)이고, 그 아래편 옹성으로 둘러싸인 문루가 평양성의 동문이자 정문 노릇을 했던 대동문(大同門)이다.

대동강을 건너 대동문으로 평양에 입성한 사람들이 다리도 쉴 겸, 풍광도 즐길 겸 오르던 곳이 연광정이었다. 대동강 물결에 햇살이 아른거리는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기에 정자 이름이 연광이다. 정자와 누대치고 좋은 경치를 끼지 않은 곳이 어디 있으랴마는 연광정은 특별하다.

정자에 올라 강의 위쪽을 바라보면 모란봉과 청류벽이 강기슭을 병풍처럼 두르고 그 앞에는 능라도가 그림처럼 떠 있다. 그 광경은 마치 햇빛에 빛나는 비단결 같다. 강 건너 아스라이 보이는 벌판과 긴 숲 밖에 점찍은 듯 이어진 산들은 말로 형용하기 어려운 장관이다. 그러기에 연광정은 관서팔경(關西八景) 중 하나로 꼽혔고, 주지번(朱之蕃, 1595-?)이란 명나라 사신은 그 풍광에 놀라 제 손으로 <천하제일강산>(天下第一江山)이라는 현판을 써서 걸어놓았다고 한다.

조선 최고의 솜씨를 지닌 겸재도 조선제일, 아니 천하제일의 경치를 화폭에 담았다. 겸재의 낙관 옆에 쓰인 <해동제일승 제일필>(海東第一勝 第一筆)이라는 글귀가 그 뜻이다. 아직도 열리지 않은 북녘 땅의 절경이 대가의 차분하고 꼼꼼한 필치 아래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다.

고진석 이사악 신부(성 베네딕도수도회 왜관수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삼아 [고진석 신부의 겸재 화첩 감상]


▲ 고산방학孤山放鶴|비단에 엷은 색|29.1×23.3cm|Releasing a Crane in Mount Gusahn|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소장

구제역이 있던 해 겨울은 살 떨리는 계절이었다. 근래 들어 겪어보지 못했던 유난스런 추위 때문이기도 했지만, 온 나라 농촌을 휩쓸어버린 몹쓸 역병 때문이기도 했다.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 사람들은 산목숨들을 모질게도 끊어버렸다. 처참한 장면을 떠올리면 마음이 착잡해진다. 그해 봄은 그야말로 찬란한 슬픔의 봄이고 침묵의 봄이었다. 그런 생각 때문인지 요즘은 봄을 알리는 매화꽃 소식이 더욱 간절하다. 내내 매섭고 살벌한 겨울을 보냈으니 필시 그 향기 깊고 그윽할 텐데.

봄의 전령 매화는 선비들이 좋아하는 꽃나무이다. 이른 봄, 눈 속에서 꽃을 피워내는 매화는 선비의 지조를 쏙 닮았다. 그밖에 선비들이 좋아했던 꽃나무에는 깊은 산중에서도 청초한 자태와 은은한 향기로 피어나는 난초, 늦가을에 모진 서리를 이겨내는 국화, 한겨울에도 그 푸름을 잃지 않는 대나무가 있다. 선비들은 군자의 풍모와 덕행을 지녔다하여 이 꽃나무들을 사군자로 높여 불렀고, 글과 그림의 단골 소재로 삼았다. 겸재 정선이 그린 고산방학도(孤山放鶴圖)에 매화를 지극히 사랑했던 한 선비가 등장한다.

송나라 때 시인 임포(林逋, 967~1028)는 항주사람인데, 평생을 홀아비로 살면서 세속 일에 연연하지 않고 유유자적하며 살았던 시인이다. 그의 삶을 닮은 시는 맑고 그윽했지만 그는 시로써 이름이 나는 것을 싫어했다. 지은 시를 불살라 버렸고, 후세에 전하여질 것이 두려워 시를 읊되 기록하지 않기도 하였다. 그가 은둔한 곳은 서호(西湖) 근처의 고산(孤山)이란 곳이었다.

그는 자신이 머물고 있는 초당 주위에 수많은 매화나무를 심어 놓고 학과 사슴 한 마리를 기르며 처자도 없이 혼자 살았다. 술을 마시고 싶으면 사슴의 목에 술병을 걸어 술을 사러 보냈고, 손님이 오면 하늘을 날던 학이 이를 보고 울며 반겼다고 했다. 사람들은 임포를 두고, ‘매화를 아내로 삼고 학을 아들로 두었다(梅妻鶴子)’고 했다.

고산방학도는 눈 덮인 산을 배경으로 시중드는 아이를 곁에 둔 임포가 막 꽃을 피운 매화나무에 기대어 하늘로부터 날아드는 백학을 바라보는 장면을 담고 있다. 속세의 더러움이 하얀 눈 속에 감추어졌고, 강산의 적막함은 숨어사는 선비의 쓸쓸한 정감을 자아낸다. 적막강산에 잔설을 가지에 얹고 꽃을 피워낸 매화의 자태는 은일처사의 고고하고 청빈한 삶을 떠오르게 한다.

장수를 상징하는 신선의 새인 학 역시 청빈한 은자의 벗이 되었다. 이렇듯 고산방학도는 임포라는 인물과 서호라는 장소 그리고 지조를 상징하는 매화가 한 화면에 어우러져 은일처사의 고아한 삶을 잘 드러내는 그림이다. 물론 겸재가 임포의 생활을 눈으로 보고 그리지는 않았다. 중국역사속의 유명한 인물들의 일화를 상상하여 그린 이런 그림들을 고사인물화라 한다.

겸재는 선의 굵기가 일정하고 단정한 필치로 인물의 복식을 그리고, 푸른색과 담홍색을 위주로 한 색채를 구사하여 인물에 강조점을 주고 있다. 비슷비슷한 구도와 장면들이 담긴 그림이 같은 제목으로 많이 전해진다. 그래도 봄의 정취를 느끼기에는 모자람이 없는 그림이다.

아직도 축생들의 원혼과 죽음의 악취가 음산하게 떠다닐 지도 모르는 이 봄에 매화타령이 가당키나 한지 모르겠다. 그래도 어김없이 찾아온 봄의 전령을 시인의 입을 빌어 반겨본다. “모든 꽃들 다 졌는데 홀로 아름다워, 풍정을 독점하고 정원을 향하였네.(衆芳搖落獨暄姸 占盡風情向小園) 맑고 얕은 물 위에 성긴 그림자 가로 비끼고, 황혼녘 달빛 속에 은은한 향기 떠도누나.(疎影橫斜水淸淺 暗香浮動月黃昏)”(산원소매山園小梅 중)

고진석 이사악 신부(성 베네딕도수도회 왜관수도원)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catholic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