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ual Retreat for the Korean (2018)

Korean Brothers will make a retreat from Monday, Oct. 8 to Friday, Oct. 12 at St. Paul’s Abbey.

We Will follow usual schedule of the monastery except Morning Prayer and Mass. During the retreat, the mass on Wednesday is in Korean. 

Retreat Schedule (Monday to Friday)

Morning Prayer and Mass ………………. 7:00 am (Korean)

2018년 여름 소식

2018년 여름

뉴튼 수도원을 아껴 주시는 고마우신 모든 분들께,

 

무더위도 이제 한풀 꺾이고 풀벌레 소리가 가을을 향해 달려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농부가 흘린 땀의 결과가 풍성한 수확의 기쁨으로 다가 오듯이 여러분의 충실한 삶이 주님 은총과 사랑으로 가득 채워지길 바라며 뉴튼 수도원 소식을 전합니다.

I. 마리누스 수사 기념식수: 6월 1일 흥남 철수 당시 14,000명을 구한 마리누스 수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해 문 재인 대통령의 이름으로 성당 앞에 기념 식수를 하였습니다. 박 효성 주미 대사가 대통령을 대신한 이 자리에는 왜관 수도원에서 온 박 블라시오 아빠스, 뉴욕 총영사 그리고 마리누스 수사의 동료였던 로버트 러니 제독이 참석하여 함께 기념식수를 하였습니다. 이들 외에도 뉴욕 뉴저지 한인 회장들과 평통 관계자들 그리고 많은 손님들이 참석하였으며, 식수 후에는 묘지를 방문하여 마리누스 수사의 업적을 기렸습니다.

II. 형제들 소식: 김 동진 마리오 수사가 뉴튼 수도원에서 5년간의 생활을 마치고 5월 30일 왜관 수도원으로 귀원하였습니다. 뉴튼에서 피정집과 손님을 담당했던 마리오 수사는 현재 왜관 수도원 도서실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6월 22일에는 지난해에 서품을 받은 김 현규 하비에르 신부가 임명되어 왔으며 수도원 재정과 주방 일을 도우며 영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III. 손님: 독일 Münsterschwarzach 수도원의 마이클 아빠스가 5월 10일부터 12일까지 수도원을 방문하여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네브라스카 주에 있는 스카일러 수도원 정기 방문을 왔다가 우리 수도원도 방문하였습니다. 5월 29일에는 스카일러 수도원의 Volker 신부가 휴가 기간 중에 우리 공동체를 방문하였습니다. 스카일러 수도원은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의 미국 분원으로 선교자금을 모금하여 여러 나라에 있는 우리 연합회 수도원과 수녀원이 하는 일을 돕고 있는데, 제 작년에 우리 뉴튼 수도원 지붕 개량에 큰 도움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5월 31일부터 6월 3일까지 박 블라시오 아빠스가 마리누스 수사 기념 식수에 동참하기 위해 와서 수도원의 현안에 대해서도 형제들과 논의를 하고 도움을 주고 돌아갔습니다. 6월 21일에는 서울 근교 성 요셉 수도원의 최 종근 파코미오 원장 신부가 방문하였는데, 파코미오 원장은 그 다음 날 Palisade Park에 있는 카톨릭 센터에서 성서팀 피정지도 그리고 6월 25일부터 7월 4일까지는 미국과 카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인 수녀들에게 피정을 지도하였습니다. 7월 5일에는 피정을 마친 베네딕도회 수녀들 12명이 수도원을 방문하여 식사를 함께 하고 수도원을 둘러보는 시간도 가졌습니다. 7월 18일에는 탄자니아 항가 수도원의 예속 수도원인 카티붕가 수도원에서 오랫동안 원장으로 봉사했던 Willibrord Nzota 신부가 방문하여 8월 9일까지 머무르며 뉴욕과 워싱톤을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밖에 아프리카 남미비아에서 활동 중인 저스틴 아빠스, 오레곤 주에서 생활하는 일데폰스 신부가 방문하였으며, 뉴저지에서 공부하는 탄자니아 베네딕도회 수녀인 루시아 수녀와 도나타 수녀가 방학을 이곳에서 지내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수도원 캠프장에서 생활했으며, 현재 토론토에서 지내고 있는 이 바오로 릿따 부부가 수도원에서 오랫동안 봉사를 했던 Daniel 할아버지의 장례에 참석하기 위해 7월 29일에 수도원을 방문하여 하루를 지내고 그 다음날 카나다로 돌아갔습니다. Daniel 할아버지는 우리 한인 수도자들이 이곳에 오기 훨씬 전부터 뉴튼 수도원의 크리스마스 트리판매를 도와주었으며, 특히 이 바오로 형제와 함께 여러 가지로 수도원에 도움을 주신 분으로 우리 수도원 묘지에 안장 되었습니다.

IV. 위령성월 연미사 안내: 우리 뉴튼 수도원에서는 매년 11월 위령성월을 맞이하여 돌아가신 이들을 위해 한 달 동안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위령 미사를 신청하실 분들은 11월 전에 수도원에 신청하시면 돌아가신 조상들을 위해 한 달 동안 미사를 봉헌합니다. 11월 위령미사를 봉헌하시기를 원하시는 분은 동봉하는 봉투에 [11 위령 미사] 표시를 해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외에 수도원에 미사를 신청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언제든지 신청해 주시면 미사를 봉헌하도록 하겠습니다. 혹시 위령 미사에 대해 문의하고자 하시는 분은 이 베르나르도 수사(973-222-2728)에게 연락하시기 바랍니다.

뉴튼 수도원을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 공동체는 지난 16년 동안 수도생활과 더불어 경제적인 안정을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오랫동안 새로운 입회자가 없는 상황에서 학교 건물마저 임대 해지로 인해 경제적인 어려움도 겪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도우심에 희망을 가지고 또한 여러분의 기도와 관심에 감사드리며 충실하게 생활해 나가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뉴튼 수도원을 위해 기도와 도움을 아끼지 않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주님의 풍성한 은총과 사랑이 항상 함께 하길 바라며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

 

김 사무엘 신부와 뉴튼 수도원 형제들 드림

Obituary – Brother of Abbot Justin

Kenneth Dzikowicz, 74 years old

Brother of Abbot Justin

Passed away on July 9th, 2018

Please remember him and his family in your prayer.

St. Nicholas Guild Picnic 2018

Old post cards of St. Paul’s Abbey

1.


The apple orchard, under the care of the Brothers, supplies the Abbey with fresh fruit and apple cider, which is sold through the Abbey Gift Shop.

2.


St. Paul’s Minor Seminary where young men aspiring to the priesthood as Benedictine Monks of St. Paul’s Abbey attend their four years of high school.

3.


From the greenhouse of our more than 20 acre nursery comes a variety of plants and shrubbery, which are grown and tended by the Brothers themselves.

4.


One of the Monks makes a meditation along the shore of beautiful Lake St. Maur on the Abbey grounds. This is also the site of Camp St. Benedict and the Abbey picnic grounds.

[Obituary] + Brother Michael Sok-cheol Yi

Brother Michael Sok-cheol Yi

13 December 1914 – 26 May 2018

Brother Michael, the eldest member of Waegwan Abbey, died peacefully in our infirmary on 26 May at 11:20 p.m. He was 104 year old and in the 77th year of his vows.

Brother Michael was born in Seoul on 13 December 1914 as the second of five children. His father was Petro Deok-sam Yi and his mother was Magdalena Seong-nyeo Chang. His family has been Christian for generations. In baptism he received the name Antonio. After graduating from elementary school he went to Dong-seong Trade School which was run by a Catholic foundation.
After reading the stories of saints in Kyeong Hyang Magazine he decided to enter a monastery.

Coming from Baek-dong Parish in Seoul he entered Tokwon Abbey on 10 June 1936. When starting his novitiate he received the name Michael. On 18 May 1941 he made his first vows. Even though it was a dark period in history which was defined by the Japanese occupation of Korea and the Second World War Brother Michael did not give up his search for God and continued his
life as a Benedictine monk while working as a book binder in the printing press, then in the sacristy, the farm and the reception of the abbey. On 20 May 1944 he made his final vows. Thereafter communist rule was established in North Korea which led to the forceful closure of Tokwon Abbey and dissolution of the community. So Brother Michael fled to South Korea. At the time the Korean War was raging. Brother Michael lived as a refugee in Busan and Daegu. Also under these circumstances he considered his life a continuation of his monastic life. He handled his hardships with strength and worked for the Church with fervor. Whatever the circumstances were Brother Michael faced them for the sake of God and considered them a part of his religious life.

The monks which had been expelled from Tokwon and Yeongil came together in Waegwan in 1952 to start again a life as a Benedictine community. During the following years he served the community as farmer in Naksan, receptionist, educator for the candidates and postulants, vegetable gardener in the abbey and through other works. From 1987 to 1992 he served as director of the old people’s home in Sonsan and from 1992 tol 1994 as director of St. Benedict Old People’s Village in Kumnam. After that he retired, returned to the abbey and devoted himself fully to religious life. Even after he became 100 years old he continued to do so. As the eldest in the community he was a model for each of us.

Brother Michael lived a life of trust in God. He also hoped that all the members of the community would lead their religious life with great fervor and live as saints. When he greeted and congratulated someone on a special occasion like New Year or other feast days he would say to them: “Become a saint!” Through his prayers he supported all of us.

Towards the end of the year 2017 his health started to decline rapidly. It became difficult for him to see and to hear. He started to suffer. Recently he fell down to the floor while being in his room at night and hurt his thigh. He was operated but was confined to his bed after that. When he received the sacrament of the sick he started to sing the ‘Suscipe’ together with the people at his bedside. It was a moving expression of his lifelong trust in the Lord.

Brother Michael was not only the eldest member of our community but of all priests and members of religious orders in Korea. We are full of admiration for his life which eradiated the fragrance of Christ.

The funeral mass for Brother Michael will be at our abbey church on 28 May 2018 at 2 p.m. Afterwards he will be buried at our cemetery near Waegwan.

Lord, give eternal peace to our Brother Michael and let your eternal light shine upon him!

27 May 2018

Abbot Blasio Park and the monks of Waegwan Abbey

From Youtube…

2018 부활소식